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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만드는 웹진 2025년 6월  341번째 이야기

2025년 6월  341번째 이야기

읽다

사랑

설렘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하나 됨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의 아픔을 내가 대신 아파했으면,
당신 말고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하는 생각이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정여울 작가

<데미안 프로젝트>저자. KBS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살롱드뮤즈> 연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데미안 프로젝트>, <문학이 필요한 시간>,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끝까지 쓰는 용기>, <공부할 권리>,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빈센트 나의 빈센트> 등을 썼다.

어린 시절에는 사랑을 생각하면 ‘설렘’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첫눈에 반하는 설렘이라든지, 그 사람과 걷기만 해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그런 싱그러운 설렘 말이다. 사랑을 책으로만 보고 실제로 경험이 없었을 때의 달콤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설렘은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 사랑의 시작일 뿐인 것을. 사랑의 색상은 그저 핑크빛이 아니라 때로는 무지갯빛, 황토빛, 그리고 눈물의 투명한 빛이라는 것을. 어른의 사랑은 치열한 책임감을 동반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무거운 책임감까지도 그저 부담이 아니라 기꺼이 떠맡고 싶을 정도로 크고 너른 마음.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이별조차도 부술 수 없는 사랑, 영원한 작별로도 결코 완전히 지워버릴 수 없는 뜨거움. 그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지만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는 것.

최근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보면서 나는 ‘사랑의 생로병사’를 한꺼번에 체험하는 느낌이었다. 그 사람이 멋지고, 대단하고, 화려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아픔을 내가 대신 아파했으면, 당신 말고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하는 생각이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하고. 주인공 이해숙(김혜자)은 교통사고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 고낙준(손석구)의 병수발을 평생 도맡는다. ‘일수’라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결코 주눅들지 않고, 빚을 잘 갚지 않는 사람들을 독촉하면서도 좀처럼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다. ‘내가 없으면 남편은 끝내 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단 한 순간도 무너질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남편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낸다. 남편의 아픔을 차라리 내가 앓았으면 하는 생각, 그 속에 해숙의 사랑이 초연히 빛나고 있다.

그런데 막상 두 사람이 모두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보니(물론 드라마 속의 판타지적 설정이다) 평생 희생하고 인내한 것은 아내 해숙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서로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진심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서 천국은 어쩌면 ‘살아있을 땐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진심’을 드러나게 하는 장치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유는 잃어버린 아들 은규를 찾기 위한 고군분투 때문이었다. 시장통에서 다섯 살 난 아들 은규를 잃어버리고 망연자실하여 정신을 놓아버린 아내를 어떻게든 살려내기 위해 남편 낙준은 백방으로 아들을 찾아보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아내는 아들을 잃어버린 것처럼 남편까지 잃어버릴까봐 또 한 번 패닉상태가 되어버리고, 급기야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잊어버리게 된다. 낙준은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을 애써 복원하려 하지 않고, 기억을 잃은 채로 내버려둔다. 아들을 잃어버린 고통과 죄책감, 미칠 듯한 그리움은 혼자서 감내하기로 한 것이다.

무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이 서로를 사랑하고, ‘저 사람 대신 내가 아파야겠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마침내 ‘내가 저 사람을 위해 감내한 고통보다, 저 사람이 나를 위해 감내한 고통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여성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의 병수발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을까. 아들이 실종된 사실을 차마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고 그 아픔을 홀로 감내하며 아내를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은 얼마나 쓰라렸을까.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의 매일매일이 따스한 미소와 환한 행복으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삶은 힘들었지만, 둘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 담긴 다정함을 한시도 놓은 적이 없었다. 마침내 천국에서 만난 아들 은규는 부모님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라고, 자신은 홀로 집을 잃고 헤맬 때의 고통보다 부모님의 따스한 사랑을 더 많이 기억할 거라고 이야기해준다. 마침내 천국까지 다다르는 사랑, 천국에서도 끝날 수 없는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당신의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을 영원히 닦아주기로 결심한 사랑. 그러니까 당신의 아름다움과 눈부심만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가장 아픈 그림자까지 기꺼이 끌어안기로 한 사랑은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사랑은 이렇게 아름답게 주고받는 이상적인 형태로 다가오는 것만은 아니다. 사랑의 비극은 ‘한쪽에서 보내는 사랑’이 다른 한쪽보다 훨씬 클 때 발생한다. 짝사랑, 외사랑, 그리고 이미 끝난 사랑을 향한 한쪽의 미련 같은 것들.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영화 <멘투비 Meant to be>는 사랑의 또 다른 본질적 측면을 아름답게 형상화한다. 이 영화는 자신이 지켜주어야 하는 인간과 사랑에 빠진 수호천사의 짝사랑 이야기다. 수호천사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바라보기만 하는 사랑’의 아픔을 형상화한 것이다. 아만다의 수호천사 윌은 10년동안 충실히 그녀를 보살피고 지켜준 결과 정식 ‘천사’로 승격을 하게 된다. 그는 새로운 임무를 맡아 아만다를 떠나야 하는 상황인데, 그는 수호천사로 일하는 동안 아만다를 진짜로 사랑하게 되어버린다. 사랑해선 안 될 존재와 사랑에 빠져버린 윌은 그녀를 직접 만나겠다고 정말 지상으로 내려가버리고 만다. 인어공주가 인간인 왕자를 사랑하여 인간세계로 올라간 것처럼, 천상의 천사 윌은 반대로 아래쪽으로 내려와 인간세계로 추락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인어공주 이야기처럼 비극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마침내 ‘인간세계의 사랑’을 어렵게 이해하기 시작한 윌의 아름다운 성장 드라마로 나아간다. 천사에게는 다행히 기회가 주어진다. 7일 안에 아만다의 사랑을 얻어내지 못하면 추락한 천사로 영원히 떠돌게 되고, 사랑을 얻게 되면 마침내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만다는 다른 남자 벤자민과 사랑에 빠져버린다. 다행히 아만다가 윌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늘 지켜주던 수호천사 윌의 다정다감함이 그녀에게 10년동안 아름다운 ‘시간의 흔적’을 남겨놓은 것이다. 벤자민이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다가오는 낯선 존재라면, 윌은 편안하고 따스한, 마치 나의 일부인 것 같은 존재다. 아만다는 마침내 낯선 남자 벤자민을 선택하지만, 윌은 아만다를 어렵게 놓아주며 깨닫는다. 깊고 깊은 사랑은 때로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을 아름답게 놓아줄 수 있는 용기이기도 함을. 그녀가 내가 없는 곳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사랑의 일부임을.

크리스티앙 보뱅의 에세이 <그리움의 정원에서>는 이보다 더욱 눈물겨운 또 다른 사랑의 형태가 나타난다. 바로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작가는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묘사하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떠났어도 사랑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의 따스한 육체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는 나’는 남는다. 나는 이런 마음이 어쩌면 ‘사랑의 궁극’일 것임을 깨닫는다. 그가 없이도 지속되는 사랑.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세상을 떠났을지라도, 마치 그가 내 곁에 있는 것처럼 아름답고 치열하게 살아갈 용기. 어떤 사랑은 이렇게 남겨진 사람을 눈부신 초월의 순간으로 끌어올린다. 그 사람이세상을 떠나도, 이제 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어도, 좌절하지 않고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것. 당신이 살아있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랐을까, 당신이 살아있다면 지금 울고 있는 나에게 무엇이라 위로했을까. 이런 질문들을 매일 던지며 하루하루를 더 아름답고 눈부시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 내게 사랑은 마침내 외롭고 비참한 오늘을 견딜 수 있는 용기이며,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는 찬란한 생의 에너지로 다가온다.

내게 사랑은 마침내 외롭고 비참한 오늘을 견딜 수 있는 용기이며,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는 찬란한 생의 에너지로 다가온다.